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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오늘의 우리만화 <자매의 책장> "책과 함께 차분하게 살아가다" 인천대학교 한상정 교수

2023.12.04

책과 함께 차분하게 살아가다

<자매의 책장>, 류승희, 보리출판사

 

 


 

 

조금 살아보니까, 꾸준하다는 게 왜 의미가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도 큰 생각하지 않고 하루씩만이라도 꾸역꾸역 살다 보면 조금씩 웃을 수도 있게 된다. 꾸준함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뒷심이구나 싶다. 왠지 류승희는 매일 규칙적으로 책상에 앉아 작업할 것 같다. 일상이 어찌 차분하기만 하겠는가, 더군다나 아이까지 키우고 있고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지나갈 거다. 그러다 피곤에 지쳐 자리에 누우면,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지났구나 내일은 조금 낫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잠을 청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지만, 새롭다는 생각도 못 하고 지나간다. 그러지 않기 위해 류승희는 만화 작업을 통해 매일을 새롭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작업하지만 칸이, 그림이, 글자가 다르고 마침내 이어지긴 하나 완전히 다른 페이지가, 다른 페이지들이 완성되므로. 이러한 꾸준함은 작품 전체가 지니는 차분함으로 이어진다. 어느 것이 더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꾸준함이 이런 차분한 시선의 작품을 만들었는지, 차분한 시선이 꾸준하게 작품을 만들게 했는지. 그렇기에 얼핏 보면 <자매의 책장>은 시시하다. 아무리 거친 생각과 감정의 표출도 마치 연필로 그린 듯한 부드러운 그림체 속에서는 종이 속으로 스며들 뿐이다. 사실 이런 접근은 2019년에 발표했던 <그녀들의 방>에서도 보였다. 전작에서는 세 자매가 등장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두 자매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동일하다. 전작이 ‘진·선·미’를 이름의 첫 글자로 써서 진영, 선영, 미영이었다면, 이번엔 ‘수·우·미’이다. 인물이 둘이므로 하나를 없애야 했는데 ‘수’가 사라져서 우주, 미주가 등장한다. 특별한 - 이름마저도 상관적인- 자매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합격했던 진영은 <자매의 책장>에서도 공무원인 우주 같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화를 그리곤 하던 선영은 그새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주 같다. 하지만 인물의 이름부터 다르므로 논리적으로는 두 작품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책임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그래도 챙기는 어머니, 자매 사이의 친밀도까지 비슷하다. 어쩌면 이 역시 작가의 안배인지도 모른다. 이어진 작품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인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즉, 작가가 다루는 세계가 특별한 개인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차분하게 시간을 들여 찬찬하게 보기만 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특히나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 웹툰 스크롤 내리듯이 빨리 넘겨버리면 결코 읽어낼 수가 없다. 페이지를 후다닥 넘기면 시시할 수 밖에 없고, 천천히 차라도 한잔 마시며 페이지를 넘기면 작가가 만든 부드러운 호흡에 맞출 수 있게 된다. 프롤로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다. 그렇다고 두 자매와 아버지의 관계, 이 가족에서의 아버지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책장을 넘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장례식장에 있었던 두 자매, 이들에게 집중하면 된다. 시선과 설명의 주체는 이들, 우주와 미주이기 때문이다. 노란색 개나리 같은 색채의 봄 섹션은 아버지 영면 후 3주기에서 시작한다. 제사상을 준비하는 어머니, 하루 3번의 약을 먹고 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다. 이어서 서구청에서 퇴근하는 우주가 나온다. 들어오며 정종을 사오라는 데 바로 귀가하지 않고 서점으로 간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사가 책들 위에서 미니어처처럼 등장하자 그녀는 책으로 그들을 조용히 덮어버린다. 힘들 때마다 서점에 들러 책을 읽으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미주가 남편 무영, 딸 연두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야 일어선다. 우주는 미주에게 아버지의 편지함을 넘겨준다. 미주네가 집으로 가고 나면 우주는 여동생이 다른 집에 산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하긴 자신도 마흔이 넘을 때까지 엄마와 함께 살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독백한다. 미주는 언니에게서 받은 아버지의 편지함을 들고 읽어보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우주도 종종 아버지의 꿈을 꾼다. 작은 미니어처 같은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열심히 걸어간다. 돌아봐 줬으면 좋겠는지, 돌아볼까 무서운지 모르겠다는 우주의 마음에서 여전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읽힌다. 미주도 아버지의 편지 속에서 행간이라도 읽어 그를 이해해볼까 하는 노력을 결국 포기한다. 이제 와서 채울 수 없는 것이다, 너무 오래된 빈 칸은. 우주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처럼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미주도 마찬가지. 그냥, 바라볼 뿐이다. 이들은 아득바득 살아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오랜 독서경험이 만든 차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사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책인 셈이다. 책 읽는 장면이 가장 다양하게 많이 등장하니 말이다. 우주와 미주의 역사는 사실 책장에 쌓여있다. 집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와 같이 있으니 차라리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나았다. 책을 펴면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서로 힘들어 보일 때 책을 선물해왔고, 지금도 책을 서로 빌려보다 책 속에 끼어둔 책갈피를 챙겨준다. 둘이 서로의 버팀목이었을 뿐 아니라, 책도 둘이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었다. 그래서인가, 작품의 마무리 역시 책과 책장이다. 미주의 이사를 계기로 집에 있는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번엔 미주가 멀리 가므로 그녀의 책을 모두 챙겨 줄 생각이다. 책을 정리하다 보니, 그 속에 쌓여온 둘의 관계가 보인다. 겹쳐지건 멀어지건 각자의 시간이 흘러가는. 그렇게 만들어진 단단함이 둘 사이에 쌓여 또 함께 흘러갈 것이다. 초록색 톤의 여름, 주황색 톤의 가을, 그리고 하늘색 톤의 겨울을 지나면 다시금 노란색의 봄이 돌아올 것처럼. 봄이라고 꽃피는 환한 이야기를 하거나 겨울이라고 침잠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계절이 어떻게 변해나가건 큰 상관없다. 그냥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를 뿐이다. 픽션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시시함이, 차분함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진짜 측면을 슬그머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