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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오늘의 우리만화 <물위의 우리>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에 대하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홍난지 교수, 만화비평가

2023.11.20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에 대하여 

<물위의 우리>글 뱁새 · 그림 왈패, 네이버웹툰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태의 대한민국. 위기 속에서 하나로 힘을 모아야 했지만 각자의 힘을 과시하느라 다툼을 반복한 세계는 수차례의 비극을 반복하고 난 뒤 결국 물속에 잠겨 버린다. 대한민국의 지도까지 바꿔버린 재앙은 지역의 패권도 뒤바꿔 놓았다. 높은 산맥이 즐비한 강원도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구축한 기지는 힘센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 제구실을 못 하고 약육강식과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는 뒷전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대상으로 약탈을 일삼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각 지역끼리의 전쟁이 일어났다.

 

 


 

 

변해버린 고향에서 느껴지는 적대감

 

 

이러한 상황에서 한호주는 딸 한별과 함께 고향으로 이주하며 <물위의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한별은 난생처음 잠실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향한다. 한호주가 고향인 양지로 향하는 이유는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적어도 잠실처럼 잦은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딸에게만은 안전하고 평안한 일상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혹은 딸을 잃고 싶지 않은 마지막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에는 무언가 비밀이 잔뜩 숨겨져 있는 듯하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도리어 시한폭탄 같은 해악을 품고 외지인을 배격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고, 양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호주는 외지인이나 다름없다.

 

외지인은 위험하다. (...) 마을에 못 보던 외지인이 보이면 무조건 도망가라.”(5) 아이들은 양지의 어른들에게서 배운 대로 호주와 한별을 멀리하려 애쓴다.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자 풍요롭지는 않지만 친숙하고 평온할 것으로 기대한 양지에서 묘한 기시감과 생소함이 든다.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한별은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험을 만끽하며 안온함과 아름다움만을 체득한다. “이런 멋진 마을에 살게 해줘서 고맙습니다.”(7)하고 양지의 촌장에게 건네는 한별의 말은 양지의 아이들이 호주와 한별을 기피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살아남기 위해 택한 타인에 대한 불신과 외면

 

 

한별이 멋진 마을이라 말하던 양지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섬이 되었고 이렇다 할 자원이나 내세울만한 기술도 없었다. 곤궁에 처한 자는 누구든 거둬들이고 가족으로 보살폈던 호주 아버지의 행동은 망해버린 세상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치였다. 어려울수록 연대하며 배고픈 자들의 거친 행동에도 기꺼이 곡식을 내어주고 비폭력으로 맞서던 호주 아버지의 유산은 양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이미 십대의 호주는 피해를 감수하면서 희생하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양지를 떠났다. 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지는 것뿐이라 생각하며 분출하지 못한 미움과 화를 난폭하게 휘두르던 호주는 잠실에서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들과 연지를 만난다. 잠실은 지역 간 전쟁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고 그들이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이 폭력으로 모든 걸 해결해 왔던 호주는 잠실에 꼭 필요한 인재였고, 연지는 점차 호주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는다. 세상에 대한 미움만 키워오던 호주를 환대하고 사랑으로 대하던 잠실 사람들과 연지로 인해 호주는 미움의 감정을 거두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호주가 고향에서 기대했던 인간성이란 가치

 

 

연지를 만나기 전의 호주의 행동과 생각은 지금 자신을 적대시하는 고향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약육강식의 무법지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타인을 불신하고 고통을 외면하며 폭력을 휘둘러야 했다. 규범과 법, 제도가 무너진 세상에서 통하는 것은 오로지 힘이다. 개인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고 도전하며 이상을 추구하는 자유를 꿈꿀 수 없고, 약하고 병든 자들은 물건처럼 취급해버리는 세상에서 인간 존중의 가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호주는 아버지의 가치관과 행동이 비현실적이라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연지를 만나 사랑하고 한별을 얻은 덕분이다. 호주가 한별을 데리고 양지로 왔던 것은 아버지의 유산이 남아 있을 것이란 기대였지만 양지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약한 자들을 짓밟았고 강자들의 논리에 화답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절망감. 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는 무력감. 이것이 양지 사람들을 비인간적 행동을 자행하도록 만들었다.

 

 


 

 

<물위의 우리>가 던지는 질문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맞이할 때 인간의 본성이 고개를 든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은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연대하여 힘을 합치고 약자를 서로 도우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폭력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 이런 인간성이란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존재일 뿐이란 허무와 인간혐오가 인간성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물위의 우리>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 이 문제를 던져준다. 약자로 낙인찍히면 버려지는 존엄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질문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가치는 희망적인가?’,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물위의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에도 이 질문이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개인주의, 타인에 대한 반감과 혐오, 약육강식 등, 우리는 물에 잠긴 세상에 살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다.

 

 


 

 

오늘의 우리가 지키고 남겨야 할 유산

 

 

아직 <물위의 우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 채 답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으로 연재되는 가운데 호주와 잠실의 형제들은 한별을 위해서 무엇을 지키고 남겨야 할지를 고민하고 양지의 어른들도 아이들을 위해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인간성이란 생존을 위해 버릴 수 있는 가치인지, 아니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인지, 믿고 지키려는 가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물위의 우리>는 인간성이란 보편의 가치를 위한 결말로 흐를 것이란 희망을 품어 본다. 호주가 고향을 떠난 것은 아버지의 유산을 저버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그 유산을 잇기 위한 것임을, 그로 인해 한별이와 친구들은 보다 살만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각자의 인생을 가꾸어 갈 것을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각자도생하라는 사회에 내던져진 오늘의 우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 속에서 겪는 고난을 통해 무언가를 선택한 주인공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할 것이란 기대, 이를 통해 우리는 현실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잊어서는 안 될 가치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만화비평가 홍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