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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오늘의 우리만화 전문가 리뷰1 <가비지타임> 만화평론가 이재민

2023.11.06

 

생존하지 못한 자들의 팀워크

<가비지타임>, 2사장, 네이버웹툰

 

 

 

우리에게 경쟁은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아니, 애초에 너무 익숙해서 경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아도 마치 공기처럼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쇼핑몰에는 판매 1스티커가 그렇게 많이 붙어 있고, 고객만족도 1위가 아닌 상품을 찾기가 힘들다. 판매자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리뷰가 괜찮은 집,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성공이 보장되는 곳을 찾는다. 한국인에게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 피해야 할 해저드(Hazard)이자, 충분히 영리하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풍토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복불복으로 이어진다. 저 사람은 운이 없어서, 실력이 부족해서, 또는 멍청해서 이 좋은 걸 누리지 못하지만 나는 운이 좋아서, 실력이 좋아서, 또는 똑똑해서 누리고 있다고 여기게 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다시, 나는 남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상대평가의 수렁에 우리를 밀어 넣는다. 한국인은 이 체계를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익히고,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심지어 정의롭다고까지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흔히 스포츠는 경쟁으로 점철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난 몇번의 올림픽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스포츠에서 감동의 순간을 목격했다. 2018년 평창에서 평생의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小平奈)의 부축을 받고 눈물을 보인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 메달에 실패했지만 활짝 웃으며 즐거움을 선사한 높이뛰기 국가대표 우상혁 선수 등 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역설적으로 현실이 이토록 드라마틱하기에, 스포츠 만화는 흔히 비주류로 여겨지곤 했다.

 

2사장 작가의 <가비지타임>은 그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심지어 고교농구라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스포츠를 통해 소재로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를 그려냈고, 그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로 온다. 스포츠만화인 <가비지타임>의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웃기고 울렸을까?

 


 


 

 

 

l  독자생존의 시대, ‘생존하지 못한 사람들

 

 

 

주인공격인 지상고등학교 농구부는 폐부 직전의 오합지졸이었다. 말하자면 엘리트 체육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비하해서 표현하자면 다른 팀의 승리의 배경인 타일 팀에 가까웠다. 아무리 좋은 원석이 있어도 제대로 깎아내지 못하면 그저 돌일 뿐인 것처럼, 지상고등학교 농구부원들은 좋은 원석이지만 제대로 깎아낼 수 있는 배경을 갖추지 못했다. 독자생존의 시대, 배경과 재능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지상고 농구부는 수순대로 폐부하고 그나마 싹수가 보이는 학생들은 좋은 학교로 전학시켜 대학 입시라도 챙기거나, 아니면 늦었더라도 공부를 시작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능력주의(Meritocracy)적 독자생존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지상고 농구부원은 이미 실패한 사람들이다. 능력이 없으니 승리할 자격이 없고, 승리할 자격이 없으니 농구라는 경쟁에서 생존할 가능성도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기상호, 진재유, 성준수, 공태성, 김다은, 정희찬으로 이루어진 여섯명 중 에이스인 3학년 진재유, 마찬가지 3학년 성준수를 제외하면 제대로 농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선수도 거의 없는 팀이다. 그야말로 패잔병으로 이루어진 팀을 맡은 이현성 감독은, 팀을 다시 깎아내기 시작한다.

 

 


 

 

 

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는 오래된 믿음

 

 

 

물론 에이스 진재유와 슈터 성준수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만, 지상고는 차근차근 농구가 팀 스포츠임을 확인해 나간다. 선수들은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각성해 나가며 각자의 개성이 팀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게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보완하는지를 고민하는 팀은 강하다.

 

반드시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독자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지상고는선수라고 부를 수 있는 다섯명도 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개인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내어 나오는 시너지는 1을 다섯번 더한 것 보다 크다는 걸, <가비지타임>은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능력주의와 독자생존이라는 관점은 개인과 개인의 합은 곱하기로만 계산하는지도 모른다. 1은 겨우 현상유지라도 시키지만, 한 사람의 능력이 1 이하로 떨어지면 평균을 깎아먹는사람이 되고, 0이면 모든 계산을 0으로 만들어 민폐가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한 명은 약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강하다는 아주 오래된 믿음을 되살려 지상고를 보자. ‘농구의 최소단위 KSH’라는 놀림을 받던 기상호는 팀이 위기에 빠진 순간에 팀을 구해내는 수비와 클러치 능력을 갖췄다. 경력이 짧아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공태성은 엄청난 덩크로 상대방의 기를 꺾어버리고, 축구부에서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김다은은 팀의 어엿한 옵션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평균을 깎아먹고, 계산을 0으로 만드는 선수들이 팀메이트가 되는 과정이다. 결국 중요한 건, ‘안 될 거니까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찾고,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며 서로를 팀메이트로 받아들이고 경기장에 나서는 마음이다.

 

이렇게 <가비지타임>의 지상고는 모두가 더하기로, 필요한 순간에는 곱하기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준다. 나의 영광이 아니라, 팀의 승리와 환희를 위해. 주목받는 선수만이 선수가 아니고, 에이스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가비지타임>의 메시지는 2023년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유머와 익살스러움은 덤이다. 서로 다른 다섯명이 만들어내는 화학적 반응은 우리를 울리고 웃기며 독자마저 하나의 팀으로 엮어낸다.

 

 

 


 


내 삶에버려지는시간은 없다

 

 

 

제목 <가비지타임>은 단어 뜻 그대로 버리는 시간이다. 이미 승패가 결정 나버려 더 이상 의미 없는 시간에 아직 ‘1인분을 해내지 못하는 선수들이나 후보 선수들을 내보내고, 경험이라도 쌓도록 하는 시간이다. 지상고 농구부는 폐부를 앞두고 가비지타임(Garbage Time)’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경쟁에서 이미 밀려나 쓸모 없어진 시간을, 지상고등학교 농구부는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냈다. 혼자의 힘이 아니라, 팀으로 하나된 덕분이다.

 

우리의 삶에도 가비지타임이 있다. 경쟁에서 나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평균을 깎아먹는 민폐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시간을 견디는 개인의 인내심과 노오력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료들이다. ‘각자도생이라는 키워드가 뜨는 세상에서 <가비지타임>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건, 바로 그들의 빛나는 팀워크 때문이다.

 

세상은 각자도생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포츠 만화는 비주류라는 편견을 깨고 만화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위로와 감동을 준 <가비지타임>, 2023년 오늘의 우리만화에 어울리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