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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2022 오늘의 우리만화 전문가 리뷰5 <신의 태궁> 만화평론가 박인하

2022.11.10

외로움과 불안, 사랑과 헌신, 망각과 진심에 대하여

신의 태궁, 해소금, 카카오웹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주류로 등장하며 거대담론은 미시담론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커다란 이야기 보다 개인의 이야기가 콘텐츠의 주류로 떠올랐다.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클리셰를 활용하고 마치 게임처럼 상태창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으로 쾌감을 전해주었다. 웹툰은 반복되는 틀 안에서 해시태그 단위로 욕망이 분절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마치 자연스레 따라 부르게 되는 돌림 노래처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발 빠른 효능감을 경험한다. 그러니 거대한 이야기가 맥을 못 춘다.

해소금의 신의 태궁은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고 독자들에게 다가왔다. 최초에 웹툰 플랫폼 UCC 게시판(도전 만화)을 통해 연재되었다. 첫 번째 연재는 2012. 두 번째 연재는 2018. 그리고 2020년에 카카오웹툰으로 자리를 옮겨 정식 연재를 시작했다. 두 번째 연재를 시작하며 중단된 첫 연재작에 재개 소식을 알리니 세상에 세상에 다시 오시다니 ㅠㅠㅠㅠ 제가 초등학생 때 본 만화이지만 아직까지도 못 잊고 있었습니다ㅠㅠㅠㅠ”(2018.12.31)라는 댓글이 달리고 베스트댓글이 되었다. 신의 태궁이 독자와 만나고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간 상황은 이 만화의 진짜 주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독서 환경이다. 모바일 앱으로 보아도 문제가 없지만, PC로 보는 편을 권한다. 최근 웹툰 연출 트렌드에 맞춘 연출이 아니라 보다 큰 화면을 전제로 연출되었다. 좁고 세로로 긴 칸이나 대각선 칸, 화려한 문양의 활용은 모바일보다 PC 화면에 적합하다. 비교해 보면 확실히 감동의 크기가 다르다.

해가 지는 서쪽 끝에 서천서역국으로 향하는 일흔여덟 갈림길의 한 갈래를 따라가면 망자들이 서성이는 거대한 연못이 있다. 연못으로 깊이 들어가 저승문도 지나쳐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어디선가 꽃내음이 풍겨오고, 수면 위로 올라가면 서천 꽃밭 중심에 커다란 기와집이 하나 나온다. 이곳은 신들의 궁전인 태궁. 여기에는 홀로 기거하며 신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태궁(장소의 이름이자 이곳 주인의 이름이다)이 있다. 신의 아이는 자라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세상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무당이 된다. 태궁과 신의 아이는 수발을 드는 도깨비들과 마주치지도 대화할 수도 없다. 빠르게 성장한 신의 아이가 세상에 내려가면, 신인 아이는 태궁에서 자란 기억을 잊는다. 태궁은 혼자 태궁에 남아 자신이 기르고, 떠나보낸 아이들을 추억한다. 신의 태궁은 밥그릇 도깨비가 태궁에 나타나며 시작한다. 밥그릇 도깨비는 무엇을 해도 좋으나 태궁께는 가까이 가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듣지만, 신의 아이가 떠나고 태궁만이 홀로 남아 쓸쓸한 적막이 흐르는 그곳에서 태궁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신의 아이가 없을 때 태궁에게 가까이 간 밥그릇 도깨비. 사람도 귀신도 아닌 도깨비들에게 곁을 주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들은 태궁이었지만 너무 외로운 태궁은 밥그릇 도깨비에게 눈길을 준다. 도깨비를 싫어하는 신의 아이는 태궁 옆을 서성이는 밥그릇 도깨비를 연못에 던진다. 사람의 형상으로 물에서 겨우 빠져나온 밥그릇에게 할머니가 말한다.

선을 넘지 마.”

여기까지 2화의 이야기다. 외로운 태궁, 태궁에게 마음을 품은 도깨비. ‘동양 판타지장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 생각하기 쉽다.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만신(무당)의 존재, 사람도 귀신도 아닌 존재인 도깨비까지. 서구 파라노말 로맨스처럼 다른 존재와 사랑을 그린 동양, 아니 한국 판타지 로맨스라고 쉽게 규정할 수 있다. 한밤중 몰래 듣는 발라드처럼 태궁과 도깨비의 사랑이라니.

태궁과 도깨비의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씩 보인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영혼 구슬의 조각처럼 본질적인 부분에 다가간다. 사랑의 이야기는 어느새 외로움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인간다움으로 확장해 나간다.

 

 

 

인간이라면 느낄. 어떤.

신을 대표하는 저승할망과 인간신을 대표하는 삼승(삼신)할망으로 구성된 세계관 안에서 작가는 익숙한 신화와 설화들로 탄탄하게 엮어 놓았다. 66화에 전체 세계관 설정을 다룬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 두 개의 달과 두 개의 해가 떠 있던 시절 남해 용왕인 저승할망은 죽음의 신, 생불황인 삼승할망인 생명의 신이 된다. 그때 천지왕이 나타나 자신과 인간 사이에 난 대별왕과 소별왕을 데려와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도록 하자 제안한다. 형 대별왕은 저승을, 동생 소별왕은 이승을 다스리게 된다. 인간 세상에는 태어나 버림받아 곰이 키운 아이가 있었는데 곰을 숭상하는 부족에게 발견되어 고마(웅녀)’라 불렸다. 곰 부족의 땅을 호랑이 부족이 노렸지만 고마의 중재로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때 고마에게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땅에 내려온 소별왕에게 가고, 소별왕은 이들을 이끌고 호랑이 부족을 전멸시킨다. 시체가 썩고 부패해 빈대, 각다귀 온갖 질병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소별왕을 따랐고 신의 말씀도 신이 되었고, 신의 말씀이 아닌 것도 신이 되었다.” 고조선 설화와 대별왕, 소별왕 설화가 엮인다.

신의 태궁을 구성하는 세계관은 태초와 지금을 오가며 묻는다.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 “네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 그리고 대답한다. “사람에 대한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고 싶어.”, “저는 사람의 의지를 믿습니다.”

거대한 세계를 만들고, 동시에 외로움과 불안, 사랑과 헌신, 망각과 진심 같은 이제는 환영받지 못하는 테마를 운명의 굴레에 구구절절하게 다룬다. 현재(77)-과거(괴괴록 20)-미래(6)까지 총 103화를 통해 신의 태궁는 복선이 회수되고, 세계가 완성된다.

만화에는 오래도록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신의 태궁의 세계관은 다른 하이판타지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 설화를 엮어 탄탄하게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 세계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만화를 보다 보면 중간중간 세계관 설정에 대한 설화가 나온다. 처음에는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태궁과 도깨비의 사랑 이야기에 세계관 설정은 부차적 요소일 뿐이니까. 하지만 작가는 웹툰 시대에 핵심 트렌드인 속도를 희생하고 로맨스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관해, 세상의 본질에 관해 묻는다. 그러니 이건 작가의 진심이다. 작가는 세계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 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그렇다고 신의 태궁이 우리에게 존재적 질문만 남기는 건 아니다. 이 만화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내는데, 독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주인공 밥그릇 도깨비가 가장 강렬하게 환기하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밥그릇 도깨비는 신의 아이를 기르다 영원한 소멸로 들어설 태궁을 위해 신의 아이가 되어 이승으로 온다. 현실에서 최정인이 된 밥그릇 도깨비는 자라는 과정에서 남다른 면모를 보인다.

성장한 정인은 만신들에게 신의 꽃을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여러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소외와 차별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다가갈수록 정인의 외로움과 불안, 사랑과 헌신은 독자를 컷 안에 붙들어 맨다.

도깨비, 저승할망, 삼승할망, 동자, 여러 만신처럼 한국 판타지에서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물론 태궁, 신의 꽃잎, 영혼구슬, 신의 아이 같은 신의 태궁이 새롭게 해석한 설정이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들로 조화롭게 배치된다. 전통 문양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작화는 독특한 선과 색, 빛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전달한다.

 

 

신의 태궁은 존재의 외로움에 대하여, 불안에 대하여, 망각과 진심에 대한 이야기다. 공멸과 상생을 고민하게 하고, 낯선 존재(타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신의 태궁은 가슴 아픈, 읽는 독자들에게 따라 각기 다른 가슴 아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