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a t a

자료실

[기타자료]2022 오늘의 우리만화 전문가 리뷰4 <집이 없어> 북칼럼리스트 박사

2022.11.08

집이 없는 아이들이 쌓아올린 집 

<집이 없어>, 와난, 네이버웹툰

 

 

 

나는 여전히, 사람을 세 줄로 요약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그 욕망에 매번 무릎 꿇는다. 들판에 지천으로 핀 꽃을 꺾어 책갈피에 납작하게 눌러놓듯이, 타인을 파악과 예측 가능한 2차원 캐릭터로 만들어 수집하고 싶은 욕망. 패턴화해서 분류한 인간군상 속에서 나 혼자 고고한 3차원의 입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 


와난의 [집이 없어]는 짧은 에피소드로 캐릭터를 파악하고 선, 악과 호감, 비호감의 구도로 분류하여 잘 수납한 뒤 종이인형 놀이하듯 서사를 즐기고 싶은 욕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는 것은 흥미롭지만 쉽지 않은 경험이다. 


이야기는 집을 벗어나고 싶어서 간신히 긁어모은 전 재산 37만원이 든 고해준의 지갑을 백은영이 훔치면서 시작한다. “미친 개”라는 소문이 붙은 고해준은 백은영이 살고 있는 텐트로 쳐들어가고, 엎치락뒤치락 싸우던 끝에 백은영은 집이었던 텐트를 잃고 고해준은 큰 상처를 입고 입원한 뒤 기숙사에 들어갈 기회도 잃는다. 살 곳이 없는 둘은 결국 학교부지에 있는 오래 된 건물에서 만나고,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견뎌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고해준과 백은영의 관계다. 귀신을 보는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따돌림 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엄마의 전폭적인 애정 아래 우직하고 올곧게 자란 고해준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한 가출청소년 백은영. 공통점이 많은 둘은 서로를 남들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작가가 백은영의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작가는 고해준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어린 시절의 서사는 보여주면서 백은영의 과거사는 요약정리해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백은영의 행동을 보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탈출한 집을 한 줄로 요약한다. “집이 있긴 해…거기서 살면…정신줄 놓을 것 같아서….”작가는 백은영의 입을 빌려 자신이 백은영의 서사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말해도 넌 몰라.”


백은영의 애정표현을 알아채기는 어렵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고해준이 감기로 앓아누워 자신을 간호해줄 엄마가 이제는 없다는 것을 절감할 때, 백은영은 고해준 옆에 있어 준다. 감기약이니 해열제니 죽과 같은 ‘간호’에 필요한 물건도 없이. 열을 재보거나 젖은 수건을 얹어주는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박주완은 그런 백은영에게 “아무리 정이 없어도 사람이 아플 땐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라고 타박하지만, 백은영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뿐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가족에게 둘러싸여 자라난 이들은 자신의 애정표현 방식 또한 배운 것임을 잊는다. 그러기에, ‘배우지 못한’ 백은영의 그저 옆에만 있어주려는 애정표현은 애틋하다. 


백은영이 살면서 배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해준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누명을 썼을 때, 어른이고 동급생이고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꾹 닫아버렸을 때 백은영은 뒤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면서, 결국 누구에게도 생색 한번 내지 않고 가해자들의 자백을 끌어낸다. 


 


다른 캐릭터들이 우리가 예상하거나 추측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반면 백은영은 그 경계를 손쉽게 넘어선다. 백은영의 주변에는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아이인 그는 교활하기도, 구질구질하기도 한 방법 또한 되는 대로 쓰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온몸에 상처를 얻는다. “나 무화역에서 한솔역까지 반바지 입고 기어서 간 적 있어.”라는 백은영의 고백은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그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뺀질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백은영의 답은 오체투지다.     


백은영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고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재미있는 서사, 사이다썰, 낭만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이 끈질기게 답답한 이야기를 쉽게 포기하리라. 현실에서 만나는 사이코패스도 감당하기 힘든데 굳이 쉽게 끌 수 있는 핸드폰 속에서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해준과 백은영은 돌아갈 곳이 없다. 함께 그 낡은 집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낡은 집에 계속 접속하고 있기만 하다면, 쉽게 판단해버린 인간의 감추어진 뒷면을 보게 된다. 


어느 누구나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든 오래 지켜볼 수만 있다면 묻힌 보석 같은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작가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고해준과 백은영이 악담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상대를 할퀴고 매번 서로를 벼랑까지 몰아가지만 그곳에서 끝끝내 서로를 밀치지 않는 것은, 마지막 한 걸음을 디디기 직전에라도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 가능성의 표현이다. 


백은영의 반대편에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는 박주완이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에 지쳐 이 아이들과 함께 흉가에서 살게 된 박주완은 평범한 아이의 전형처럼 보인다. 적당히 오지랖이 넓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이기적인. 그렇지만 박주완은 아이들 하나하나와 만나 관계를 만들어 갈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들 사이의 관계는 유일무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은 여러 방향으로 커팅된 돌처럼 다양한 면모를 가진다. 이 진실을 박주완은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고해준과 백은영, 박주완 외에도 김마리, 강하라, 공민주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을 묘사한다. 한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부모들은 저마다의 서사와 욕망에 따라 아이를 좌지우지하고, 어른의 사정에 제멋대로 이용당하거나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이기적으로 자라 접점이 없어보였던 아이들은 문득 타산지석과 동병상련의 교차로에서 만난다. 그러나 한두 개의 접점을 발견했다고 해서 쉽게 서로를 인정하거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복잡한 감정을 밀고 나감으로서 이 캐릭터들은 현실감을 갖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나쁜 버릇을 버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어렵다. 자기 방어 기제를 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어려운 일을 쉽게 요구하고 쉽게 평가한다. 독자들은 이야기속의 캐릭터에게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한다. 저 자신의 어려웠던 경험은 까맣게 잊고서. 


 


작가는 잊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장점 중에 하나는 대책 없는 해피엔딩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상대방에게서 뜻밖에도 자신과 닮은 면을 보면서 서로를 위하는 법을 배우지만 그렇다고 해서 덥석 어깨 끌어안고 친구가 되지 않는다. 고해준과 백은영 사이의 틈은 언제 줄어들까? 줄어들기는 할까? 우리는 고해준과 백은영이 화해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여기에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덧붙여야 한다. 둘이 화해하고 친구가 되는 것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서로의 닮음을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서로의 차이를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같이 살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해준과 백은영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공존규칙을 만들어간다. 월, 수, 금요일에는 평범하게 대화하고 화, 목, 토, 일요일에는 대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능한 한 말을 섞지 않는 방식으로.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관계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이 규칙은 당황스러운 해법이지만 서로의 말을 꼬아듣고 오해하곤 하는 그들에게는 싸움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궁여지책이다.


결국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하는 순간 작가는 바로 제동을 건다. 솔직함 또한 상황에 따라 독이 되기 마련이니까.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솔직함과 거짓으로 양분된 ‘말’이 아니라 말의 이면이다. 험악한 표정과 상대에게 상처 주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말 뒤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말은 말 자체로 박제되고 표정은 표정대로 기억에 남지만 상황과 과정은 늘 기억의 바깥에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은 그것 아닐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끝끝내 변한다. 아직 연재중인 이 작품에서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 끝끝내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얻기 어렵기 때문에 선물 같은 서로의 손을 잡고 튼튼한 집을 짓는 그 순간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납작하게 눌려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2차원의 윷놀 이판이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 그대로 담긴 한 채의 집 같은 3차원의 우리들을. 이 아이들에게는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