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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2022 오늘의 우리만화 전문가 리뷰3 <좋아하면 울리는> 만화문화연구소 위원 조경숙

2022.11.07

 

<좋아하면 울리는>, 천계영, 카카오웹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시작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는,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앱 '좋알람'이다. 다른 이를 향한 연심이 측정 가능한 데이터로 변환되면서, 세상은 크게 뒤흔들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알람'을 통해 마음을 확인 받으려 하고, 또 더 많은 이에게 사랑 받기 위해 욕심낸다.

 

 

 

좋알람이 등장하며 많은 관계가 바뀌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이들도 있지만 헤어지는 커플과 이혼하는 부부도 생겨난다. 저마다 좋알람을 설치하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 한다. 많은 관계가 변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사람의 노력과 성장, 변화의 가능성이다. 주인공 김조조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좋알람' 앱의 핵심 이해관계자가 된 캐릭터다. 조조는 좋알람 앱의 감춰진 기능인 방패의 존재를 아는 데다 이를 이미 적용하고 있는 사용자이며 좋알람'을 비판한 소설인 <울리는 세계>의 작가이기도 하다. 참고로 방패는 누구의 좋알람도 울릴 수 없는 히든 기능으로, 이를 한 번 활성화하면 마음대로 해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좋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혜영과 조조는 서로의 마음을 신뢰한다.

 

<좋아하면 울리는>의 서사 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작품의 중심 서사는 조조, 혜영, 선오의 삼각관계이지만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의 서사도 여기에 깊이 있게 관여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인식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작품의 주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사랑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마음들 속에 복잡하게 얽힌 욕망과 관계성을 보여준다. 매 순간 등장인물들은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들을 고심하며 고르고, 그에 따른 변화를 감당한다. 물론 그 이후 또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선택을 통해 성장을 맞는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굴미. 굴미는 어린 시절부터 조조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끌어내리는 등 악녀다운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작품이 전개될수록 자신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욕망과 현실의 갭을 직면한다. 그럼에도 굴미는 남들에게 선망 받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응한다. 그래서 좋알람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좋알람 배지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굴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전심의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끝내 변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막스'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놓치고야 만다.

 

사랑은 단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볼 때마다 설레는 감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다. 사랑은 외로움, 불안, 고독뿐만 아니라 자긍심, 희망, 신뢰와 같은 단어와도 엮여있다.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좋알람' 앱 하나로 수만 가지 감정과 욕망, 관계를 다루어내는 이유다.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아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고, 징그러운 욕망으로 보이는 할머니 팬의 마음에도 진실함이 있다. 쇼윈도 잉꼬부부로 한평생 살아왔더니 어느 순간 그 나름대로 사랑이 되는 관계 또한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1'로 보여주는 이 단순한 정량 지표 아래에는 숫자로 포섭될 수 없는 수만 가지 마음의 물길이 흐른다.

 

  

 

개인적으로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혜영의 엄마다. 그는 대저택에서 파출부로 일하며 가사와 가족들을 살뜰히 돌보고, 홀로 혜영을 키우면서도 그에게 풍족한 사랑과 자긍심을 선사한다. 게다가 사소한 사건들에 절망하지 않으며 언제나 밝고 꼿꼿하게 다시 일어난다. 어떠한 고난과 불행에도 결코 "구겨지지 않겠다"는 조조의 다짐을 있는 그대로 실현한 인물이다. 수십 년 만에 파출부 일을 그만두고, 선물 받은 파티용 원피스를 입고 커다란 백팩을 짊어진 채 명랑하게 세계여행을 떠나는 그의 모습은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주연 캐릭터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다양한 캐릭터들에게 하나하나 생동감 넘치는 대사와 깊이 있는 서사를 부여해 작품의 세계를 폭넓게 확장시켰다.

 

이 외에도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이 일궈 낸 실적은 눈부시다. 잘 알려져 있듯, <좋아하면 울리는>3D 모델링 프로그램을 도입해 창작된 만화다. 천계영 작가는 여기에 더해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음성으로 핸들링할 수 있도록 음성 인식 시스템을 접목시켰다. 실제로 만화 작업 특성상 다수의 만화가가 손목 관절에 대해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손으로 직접 펜을 잡는 대신 말을 통해 음성을 인식하여 창작하는 방식은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특히 천계영 작가는 음성 인식을 접목시킨 3D 모델링으로 만화를 창작하는 모습을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하면서 다른 만화 창작자들에게 구체적인 레퍼런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 <좋아하면 울리는>은 작품 하나로 종결되지 않고, 나아가 콘텐츠 안팎으로 뻗어나가는 하나의 유니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된 <좋아하면 울리는>도 있지만, 이를 위해 LoveAlram이라는 공식 앱을 출시하기도 했다(물론 만화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굿즈 성격을 지닌 앱이다). 나아가 '좋알람'이라는 기본 설정을 공유한, 다른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살구 작가의 <날 울리지 마>). 그 외에도 천계영 작가는 여성 만화작가들의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만화창작 카페 좋아하면 울리는을 운영하고 있다.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이 지닌 세계관도 주연과 조연을 뛰어넘어 수많은 캐릭터의 관계성을 다루는데, 이 작품은 외적으로도 콘텐츠 업계 전반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1996년에 데뷔한 천계영 작가는 이십 년이 넘도록 만화 작품을 선보였다. 그 사이 만화 업계는 폭풍같은 변화를 겪었다.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가 향유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따라 작품의 판형, 컷 연출, 작업 방식, 나아가 계약이나 유통까지도 격변했다.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는 와중이었지만, 천계영 작가는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을 계속해서 창작해왔다. 이전의 작업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며 창작 환경을 선제적으로 바꿔내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그는 매 순간 시대의 흐름에 성실하고 유연하게 응답해 온 작가다.

 

 
 

더 이상 그릴 수 없을 때까지멈추지 않고 그리겠습니다.” 천계영 작가가 <좋아하면 울리는> 후기에 쓴 문구다. 그는 이미 스무 해가 넘도록 이 약속을 지켜왔다.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은 작품 자체로도 빛나지만,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 속에서 작가가 보여준 행보도 독보적이었다. 새로운 시도와 확장, 연대의 과정 속에서 창작된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은 우리나라 만화계의 오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만화가 서 있는 오늘을 몸소 일궈 온 작품이다. 2022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