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롱 회원] 해녀가 전복을 따듯이 그리자... 제한된 시간 안에 파바박 따는 것처럼...

2026-10-02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협) 두 번째 뉴스레터 인터뷰이로 울롱 작가를 만났습니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철과 얼음의 여정>을 연재하고 있는 울롱 작가는 19세기 말 남극을 배경으로 로봇과 인간, 모험과 호러를 결합한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풍부한 정보와 설정을 작품 곳곳에 녹여내는 한편, 편지와 신문 등 본편과 연결된 부록을 활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4일, 양천구 소재 한 카페에서 울롱 작가를 만나 <철과 얼음의 여정>의 세계관과 소재를 선택하게 된 계기부터 정보를 이야기로 전달하는 방식, 데뷔 전 만화를 꿈꾸게 된 순간과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뷰 당시 촬영한 사진에 작은 해프닝이 생겨, 이후 작가님과 다시 만나 협회 사무국에서 사진을 한 번 더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만화도 혼자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최근에야 깨닫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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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재 중이신 <철과 얼음의 여정>은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례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배경이나 소재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좀 특이한 편입니다. 그래서 간단한 물체를 그릴 때는 남들보다 느리면서 복잡한 물체를 그릴 때 시간이 적게 걸리는 편이에요. 로봇은 이 특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소재였어요. 그리고 로봇의 차갑고 황량한 느낌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남극을 골랐습니다. 19세기 말의 남극은 탐험과 미지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까지 함께 가져올 수 있었고요.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연출, 대사, 캐릭터) 혹은 이번 작품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보전달입니다. <철과 얼음의 여정>은 정보량이 많은 이야기예요. 독자들이 피곤해지기 쉬울 뿐더러,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걱정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정보를 쉽고 재밌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구도도 명암도 정보전달이 잘 되는 방향으로 잡았고요. 카메라를 넓게 잡는 연출을 특히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동량을 줄이면서도 남극의 허허벌판을 강조할 수 있다 보니까 편리한 연출법이에요.

또 지금은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가장 공들인 부분은 기초 뼈대겠네요. 19세기, 남극, 모험, 호러, 기계, 역사 등 <철과 얼음의 여정>은 여러 속성을 가졌죠. 어떤 속성을 내세울지, 어떻게 표현할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충분히 생각한 다음 작업에 착수했어요. 그래서 기초 작업 이후로는 작업하기가 정말 수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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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 말미에 편지나 신문 등 본편과 연결된 부록 형식의 글을 선보이고 계신데요.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코걸음쟁이의 생김새와 생활상>(하랄트 슈튬프케 지음, 북스힐 펴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세계관의 설정을 설명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곤 하죠. <코걸음쟁이>는 완벽한 반례일 겁니다. 설정 자체의 내용과 풀어내는 방식이 재밌으면 설정만으로도 큰 재미를 줄 수 있어요. 

연재 직전에는 겁이 좀 많이 났어요. 부록이 있으면 읽기 피로하지 않을까 걱정했죠. 무엇보다도 제일 불안했던 점은 다른 웹툰들이 이런 부록을 넣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다들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서 기뻤습니다. 본래 3~4화에 하나꼴로 넣을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최대한 자주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2025년 데뷔하신 신인 작가님으로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 순간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영화감독을 꿈꿨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영화 촬영 현장에 가봤는데, 그때 영화감독의 일이 ‘영화를 만들게 시키는 일’이라고 느끼고 만화가로 흥미를 옮겼죠. 만화는 작품의 결정권이 저에게 온전히 있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혼자 일하는 게 적성에 맞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근에 박찬욱 감독님께서 반대로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기 때문에 보람 있다.”라고 인터뷰하신 걸 봤어요. 같은 이유로 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 재밌더라고요. 게다가 만화도 혼자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최근에야 깨닫고 있네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능력도 계속 키워나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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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인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만약 만화가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셨다면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지, 혹은 과거에 꿈꾸셨던 다른 직업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중학생 때부터 만화가를 꿈꿨고 남몰래 그림과 스토리를 연습했어요. 하지만 혹여나 부모님이 반대하실까 봐 주변에는 말하지 못하고 공대 전자전기과로 입학했어요. 저는 과학이나 물리를 좋아해서 공대에서 성적도 꽤 잘 나왔고, 처음에는 공대가 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가서 생각해 보니, 공대를 졸업한 뒤 할 수 있는 직장생활이나 직종이 저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화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시각디자인을 전공해 직업을 갖는 편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전과를 결정했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아마 만화가가 되지 않더라도 창작 관련 직종, 특히 프리랜서를 선택했을 겁니다.



만화나 웹툰을 전공할 수 있는 학교가 많은데, 관련 학과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만화가라는 직업이 불안정하기도 했고, 제가 정말 만화가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겁도 많아서 부모님께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네이버웹툰 최강자전 예선을 준비하면서 작업한 것을 아버지께 보여드리며 만화가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제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니 흔쾌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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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호메레스>를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된 독자와 동료 작가분들도 많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해당 작품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작품을 통해 얻은 경험이나 변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약간 도박이었지만, <방구석 호메레스>(울롱코믹스 펴냄)는 <철과 얼음의 여정>이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본편을 통해 저를 알게 된 독자들에게 ‘이 작가는 이야기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를 먼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방구석 호메레스>는 개인적인 수련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방구석 호메레스>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죠. 덕분에 이야기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어요. 이야기에 따른 화풍의 디자인도 본작을 통해 공부했고요.

<철과 얼음의 여정>에 영향을 끼친 부분도 많죠. 설정 부록도 사람이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가 꼭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대리만족뿐은 아니며, 아이디어나 구조 그 자체도 재미가 될 수 있다는 걸 시험해 본 결과고요. 그 밖에도 현실과 픽션의 경계, 고전에 대한 존중, 창작자로서의 책임감 등 <방구석 호메레스>에서 정리한 제 생각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작품을 선보인 이후 독자분들의 반응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혹은 작가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유료분 에피소드인데요. 33화에서 “살덩이 인간과 쇳덩이 인간의 미묘한 작화 차이가 엄청나다”라는 댓글을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실제로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거든요. 살덩이 인간이 나올 때가 오히려 복잡한 기계를 그릴 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정도예요. 이렇게 공들인 부분을 정확하게 알아봐 주셔서 고마웠죠. 엇나간 부분에서 과대평가는 칭찬을 받으면서도 씁쓸하니까요. 반대로 제가 서툴렀다고 생각한 부분을 독자분들이 잘했다고 하면 ‘내가 보는 눈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조금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해녀가 전복 따듯이 그리자고 생각해요. 제한된 시간 안에 파바박 따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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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작업 시간이나 작업 공간, 마감을 준비하는 방식 등 작가님만의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작업 루틴이나 습관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해녀가 전복 따듯이 그리자’라고 말합니다. 해녀분들은 공기통도 없이 잠수해서 제한된 시간 안에 파바박 따야 되잖아요? 원고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전속력으로 작업하나 느릿느릿 작업하나 허리 건강엔 별 차이가 없더라고요. 허리 건강은 같은 자세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안 좋아지지요. 그래서 제가 잠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20~30분 동안 쫓기듯이 작업을 하고 휴식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재밌게 보셨거나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혹은 작가님께서 ‘인생 만화’로 꼽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만화는 <골든 카무이>(노다 사토루 지음, 슈에이샤 펴냄)를 제일 좋아합니다. 권말에 참고자료 목록이 달리는데, 분량이 상당합니다. 그걸 보고 자극을 받아서 <철과 얼음의 여정>도 관련 자료 조사에 힘을 썼습니다. 다른 면도 꽤 닮은 점이 많을 거예요. 
특히 관련 지식들을 이야기 중간에 삽입하는 방식이 <골든 카무이>에서 가장 영향 받은 부분입니다. 이런 지식 서술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곤 하지만 <골든 카무이>는 매력으로 활용했습니다. 서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지식 서술이 이야기를 깊게 만들면서도 재미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점. 이 점이 <철과 얼음의 여정>에도 크게 반영됐습니다. 게다가 이런 정보들이 서사에 침투하는 순간 쾌감도 상당하고요. 부록에서도 남극 관련 지식(기후 등)도 많이 서술할 예정이었으나 후순위로 미뤄지게 됐네요. 아, 물론 부록의 정보들이 서사에 침투하는 일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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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만화 생태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생존하기’겠네요. 그런 선례가 계속 나와야 개성 있는 작품이 나오고 만화 생태계에 활력이 넘치겠죠. 일단 저부터가 그런 선례들을 읽고 자라서 이런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할 수 있었으니까요. 받은 만큼은 베풀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협회원으로서 한국만화가협회에 기대하는 역할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만화가가 본인이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시길! 특히 작품 다양성을 위해 힘 써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작품 다양성의 증가는 작가와 독자 양쪽의 행복으로 이어지는데, 플랫폼과 작가들만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밖에도 수요상담소 같은 프로젝트도 이대로 유지해 주시길! 작년에 도움 많이 받았거든요, 만화 생태계를 중시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앞 질문에서 말했죠? 만화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만화가협회를 응원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네요. 어떻게든 도울 일이 있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정리 김유진 매니저

사진 박덕진 매니저

 

 

앞으로 격주로 발행될 뉴스레터에서는 회원 작가 인터뷰와 함께 협회 행사 사업 소식부터 업계 최신 동향까지 폭넓게 다룰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